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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독일, 클래식의 거장 베토벤이 죽음을 앞두고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베토벤의 친아들?

 

 

베토벤은 귀족 여성,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어린 여성, 남의 아내, 자신의 제자 등 수 많은 여성과 염문설을 남겼지만 정작 결혼까지는 하지 못한 독신으로 산 음악가 였습니다.

 

 

베토벤의 여인들에 대해서는 영화 '불멸의여인'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숨겨진 딸

베토벤의 일생이 본격 연구되면서 베토벤에게 친딸이 있었다는 주장이 점점 유력해졌습니다.

 

 

바로 베토벤과 '요세피네 폰 브룬스비크' 사이에서 '미노나 폰 슈타켈베르크' 라는 딸이 태어났다는 것인데요.

 

참고로 요세피네는 베토벤이 가장 애절하게 사랑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Andante favori F장조'가 그녀를 위한 헌정곡 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요세피네'가 죽게 될 때 딸에게 고백을 하였고 파장을 우려하여 세상에는 알리지 않았다가 후에 많은 베토벤 연구가에 의하여 비로소 이런 의혹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베토벤은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아들 카를 판 베토벤
카를 판 베토벤은 베토벤의 아들입니다.

 

다만 친아들은 아니고 친동생 카스파 판 베토벤의 아들로 동생이 결핵으로 사망하자 입양을 한 것이었습니다.

 

카를 판 베토벤은 베토벤의 인생 후반기에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베토벤 가문을 이어갈 유일한 후손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동생이 죽자 동생의 아내이자 칼의 엄마였던 요한나로부터 조카를 데려오기 위해 치열한 소송전을 벌였습니다.(요한나는 당시 사생활이 문란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때 베토벤의 카를에 대한 집착은 점점 심해져서 거의 편집증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거의 4년이라는 세월동안 진행된 양육권소송에서 베토벤은 승소하였지만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었던 베토벤 역시 제대로된 아빠는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은 권위주의적이었으며 툭하면 화를 내는 데다 대화가 아니라 명령으로 '카를'를  가르치려고 하는 빵점짜리 아빠였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카를이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장차 자신처럼 뛰어난 음악가가 되길 바랬지만 카를은 음악에 대한 흥미나 재능이 없었으며 카를은 삼촌이 적성에 맞지 않은 음악을 강요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1824년 빈 대학교를 자퇴하고 군대를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연히 베토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고, 두 사람은 2년간 이 문제를 놓고 다투다 점점 격해져서 급기야 우울증에 걸린 카를이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빗겨나갔으나 이로 인해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결국 1927년 군대에 입대를 하고 맙니다.

 

 

이미 중병에 걸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했던 베토벤은 크게 상심하였으며 카를이 떠난 후 약 두달 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조카이자 아들 '카를' 앞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카를'은 제대 후 '카롤리네 나스케'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여 1남 4녀를 낳았는데 자신의 아들에게 삼촌과 같은 '루트비히'라는 이름을 붙혔습니다.

 

원수같아도 그래도 생전의 자신의 삼촌이 그리워했던 베토벤의 아들 칼 판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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