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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최고의 순간 스피드를 내는 육상 100m 경기, 1960년 로마올림픽 여자100m의 주인공은 '윌마 루돌프'라는 흑인여성 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 된 루돌프,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던 소녀 였습니다.

 

 

절망은 없다!! 윌마 루돌프 이야기

1940년,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의 슬럼가에서 22형제 중 20번째로 태어난 윌마루돌프, 태어날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고작 2kg도 되지 않는 미숙아였으며 4세 때 폐렴과 성홍열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당시 의사는 “걸을 수조차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루돌프의 집은 가난했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병원보다 그 어떤 의사보다 뛰어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어머니 블랜치 였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으로 소아마비를 뛰어넘다

블랜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딸을 위해 병원을 찾아다녔으며 나중에는 직접 물리치료를 배워 집에서 재활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루돌프의 언니들도 물리치료법을 배웠고, 결국 루돌프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헌신 덕분에 그녀는 8세 때는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11세 때에는 보조기구마저 벗어 던졌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루돌프는 다리 근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구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는 한 경기 최고득점과 한 시즌 최고 득점 기록을 경신하며 이름을 알렸고 그런 루돌프를 지켜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테네시 주립대학의 육상 코치 에드워드 템플이었습니다. 에드워드는 그녀를 농구선수가 아닌 육상선수로 키우고자 테네시 주가 운영하는 육상팀 타이거벨스에 입단시키게 됩니다.

 

처음 그녀는 자신보다 육상을 먼저 시작한 동료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어머니 블랜치는 “의문은 그만 품고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며 다그쳤습니다.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6년, 루돌프는 호주 멜버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 여자400m릴레이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후 편도선염 수술로 한 동안 트랙을 떠났던 그녀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올림픽 3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 역사상 여자 선수가 한 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그녀가 사상 최초였으며 1961년 그녀는 100m를 11초2주파 여자세계기록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반 상을 받았으며 1960년과 1961년 세계최우수여자선수도 2년 연속 그녀의 차지였습니다.

 

‘국제 여자 스포츠 명예의 전당’, ‘미국 육상경기 명예의 전당’, ‘올림픽 명예의 전당’, ‘흑인선수 명예의 전당’ 등 전당이라는 전당에는 죄다 이름을 올리며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나도 '윌마 루돌프'가 친송받는 이유는 단지 장애를 딪고 절망을 극복한 훌륭한 선수이기만은 아닙니다.

 

그녀는 은퇴 후 인권운동가로 제2의 트랙을 달렸습니다.

 

아마추어로만 활약하다 22세에 트랙을 떠난 후 그녀는 ‘윌마 루돌프 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청소년육상경기대회를 지원했습니다.

 

그녀는 특히 자신이 흑인여성으로서 많은 차별을 경험했기에, 인권운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공공장소에서 백인과 흑인을 차별하는 법’에 정면으로 맞서며 투쟁하기도 했습니다.

 

루돌프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자신의 유산은 3개의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빈민촌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윌마 루돌프 재단’이었습니다.

 

 

1994년 그녀가 뇌종양으로 숨을 거뒀을 때, 많은 이들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루돌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마을에 있는 79번 국도를 ‘윌마 루돌프 가로수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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