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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 '철가면'은 프랑스 국왕 루이14세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는데 혹시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얼굴에 철가면을 쒸어 감옥에 20여년을 감금해 놓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아이언 마스크' 또 뮤지컬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르며 우리에게 익숙한 '철가면' 이야기 

 

 

무겁고 답답한 철가면을 쓰고 일상 생활을 하는 것은 실제로 있기 힘든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이를 직접 실험해 본 이가 있으니 바로 미국의 백만장자 '존 피어폰트 모건'과 영국의 귀족 '론스데일' 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세상을 활보하며 생활할 수 있을까"를 두고 논쟁을 하였는데 론스데일은 그럴 수 있다! 모건은 그럴 수 없다! 라는 쪽 이었습니다

 

 

결국 논쟁이 끝나지 않자 10만달러를 걸고 직접 실험해보기로 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도 안되는 내기를 진행할 인물은 바로 플레이보이로 소문난 '해리 벤슬리' 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내기를 하기전 두 사람은 게임의 규칙을 정하였습니다.

 

해리벤슬리는 영국의 여러 도시를 포함한 18개국의 125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첫째. 뒤마의 소설 철가면의 주인공처럼 벤슬리도 항상 철가면을 써야 한다.

 

둘째. 단 1만 파운드만을 가지고 출발해야 하며 여비는 우편엽서를 팔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셋째. 얼굴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신부감을 구해야한다. 그리고 이런 규칙들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디가드 겸 감시 역활이 동행을 하였습니다.

 

1908년 1월1일 2kg 상당의 철가면을 쓰고 90kg에 육박하는 유모차를 밀며 떠난 해리벤슬리의 여행은 쉽지 않았습니다.

 

국왕 에드워드7세는 해리에게 엽서를 사면서 사인을 요구하였는데 해리는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까봐 왕의 사인요구에 무례하게도 거절해야 했으며 켄트지방의 한 마을에서는 허가없이 엽서를 팔았다는 죄목으로 체포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해리벤슬리는 철가면을 쓴채 법정에 나섰고 판사는 벗으라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철가면을 쓰게 된 연유에 대한 설명을 하였고 다행히 판사는 해리를 철가면을 쓴 사나이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하여 2실링 6펜스의 벌금만 물게 했습니다.

 

 

해리벤슬리는 6년동안 유모차를 몰고 몬트리올, 시드니 등 12개국의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 무려 2백명 이상의 여인이 청혼했고 그 중에는 귀족여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1914년 이탈리아 제노바에 도착, 긴 여행의 끝이 보일 무렵 그만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애국청년이었던 그는 군에 입대하였고 결국 내기는 중단이 되었습니다.

 

해리는 위로금으로 4000파운드를 받았으나 그는 그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해리벤슬리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에 투자해 둔 재산이 모두 날아가버려 무일푼이 되었고 브라이튼의 한 아파트 단칸방에서 1956년 쓸쓸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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