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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부두, 차에서 내리는 한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두 명의 조선인이 있었습니다.

 

 

처음 암살을 시도했던 남성은 자신의 권총이 불발이 되자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백인남성을 가격하였고 두 사람의 몸싸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세발의 총성이 울렸고 이윽고 백인남성은 쓰러져버렸습니다.

 

과연 두명의 조선인은 누구이며 왜 미국에서 백인남성을 백주대낮에 살해를 하려고 했을까요?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먼저 두 명의 조선인에게 암살시도를 당했던 백인남성은 바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한국이름 수진분) 입니다. 

 

 

 

D.W 스티븐스는 미국 워싱턴 주재 일본외무성 고문으로 일제의 외교를 자문하는 친일파 미국인 이었습니다.

 

 

스티븐스는 을사늑약, 고종의 강제 퇴위, 한일신협약 체결 때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본이 한국을 '병합'할 수 있는 길을 트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일본으로부터 욱일장(일본의 훈장)을 하사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1908년 3월,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대한제국을 비하하고, 일본의 보호통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 조선인들은 좋은 일이 많습니다. 그들은 옛 정부의 학대를 받지 않으니 일본을 매우 환영하고 식민지가 되길 원합니다." -1908년 인터뷰 중 -

 

 

 

 망언에 분노한 조선인

 

스티븐스의 일본의 한국침략을 찬양하는 망언은 수 많은 조선인들을 격분하게 만들었고 이에 독립운동가 전명운과 장인환이 그를 암살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두 사람은 이전에 만난 적도 없었으며 우연히 같은날 같은장소에서 스티븐스를 저격하려고 했던 것 이었습니다.

(1) 전명운

 

1884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여 1905년 하와이로 이민, 1년간 농장에서 일하다가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으며 철도공사장이나 알래스카 어장 등의 노무자로 지내며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DW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주재 일본영사와 함께 오클랜드역에 내리는 기회를 이용, 기습하였고 불발된 권총으로 강타, 격투를 벌이던 중 같은 목적으로 대기하고 있던 장인환이 스티븐스를 저격, 중상을 입혔습니다.

 

 

장인환의 공범자로 구속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고 그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7년 비참한 생활고 끝에 사망하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명운이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안중근 의사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의사는 전명운에게 큰 영향을 받아 몇 달 후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게 됩니다.

 

(2) 장인환

 

1876년 평양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1905년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이듬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철도노무자, 알래스카 어장노무자로 일하였습니다.

 

 

전명운과 마찬가지로 스티븐스를 암살하려 오클랜드역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전명운이 먼저 불발된 권총으로 습격, 격투를 벌이는 것을 보고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쏘아 중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장인환이 쏜 총상으로 스티븐스는 2일 후에 사망하였고 장인환은 재판에서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애국심과 예의바른 품행으로 10년 만에 출옥 하였습니다.

그 후 장인환은 조선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세탁업을 하였으나 병고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장인환과 전명운!!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의열투쟁이었으며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대한독립의 주역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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