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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한 진실 '빛과 그림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사이클 선수로 일본이 조선인의 기를 죽이려고 개최한 자전거 경기에서 일본인들을 제치고 우승하여 조선인들의 영웅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자전차왕'이라 불렀습니다.

 

 

1892년 서울에서 태어난 엄복동은 "일미상회"라는 자전거 점포에서 일하며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당시 엄복동의 집은 서울이었고 '일미상회'는 평택에 있었는데 그는 매일 60여키로(64.9km)에 달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였다고 합니다.

 

 

엄복동의 자전거 선수로서 시작은 1913년 개최된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로 이 때 엄복동은 중고 자전거 끌고 나와 우승을 차지하고, 이후 열리는 대회마다 휩쓸고 다니게 됩니다.

 

엄복동의 빛

일본의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들의 기를 꺾고자 엄복동을 밟아주기로 결정한 일본은 1920년 5월 2일 일본의 고수 모리 다카히로까지 초청해서 경성시민대운동회의 자전거 경기를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발라버리는 엄복동!!

 

 

당시 일본은 심판이 경기를 고의로 중단시키며 전차왕의 우승을 막는 협잡질을 하였고 이에 광분한 엄복동이 우승 깃대를 잡아꺾자 일본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구타하니 분개한 조선인들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라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열린 경기에서 신나게 일본인들을 발라버리며 우승하였고, 이는 당시 비행기 조종사였던 안창남과 더불어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는 "떳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면 엄복동 자전거"라는 '안창남 비행기'라는 노래가 불리워질 정도로 둘의 인기는 엄청났습니다.

 

 

엄복동의 그림자 
하지만 엄복동은 자전거 절도 전과자 입니다. 그것도 선수시절이었던 1926년과 은퇴후인 1950년 두번의 절도전과가 있습니다.

 

엄복동은 자전거 수십 대를 훔쳐 장물로 팔았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자전거의 가치는 쌀 수십 가마니 수준으로 현재로 치면 거의 고급 외제차 가격 수준이었습니다.

 

엄복동은 선수시절 벌어놓았던 돈을 다 탕진하고 집이 없어 동두천시, 의정부시 일대를 떠돌았으며, 6.25 전쟁 시기가 한창이던 1951년 동두천의 야산에서 폭격에 맞아 사망했다고 합니다.

 

 

1977년에서 1999년까지 대한사이클연맹에서는 엄복동배 전국사이클경기대회 개최하기도 하였고 그가 타던 자전거는 등록문화재 46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참고로 엄복동의 자전거는 영국의 러지(Rudge-Whitworth)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자전거 중 가장 오래된 자전거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자전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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