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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정남규 연쇄살인사건'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연쇄살인범의 웃음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2년 남짓동안 서울·경기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대한민국 최초의 쾌락연쇄살인범 입니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이 바로 정남규 입니다.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 -정남규-

 

 

정남규는 짧은시간 동안 벌린 범죄횟수 뿐만 아니라 흉악성으로는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며 국내최악의 또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쾌락살인범 입니다.

 

 

정남규 연쇄살인사건 범행 일지

 

① 2004년 1월 14일, 부천시에서 윤 군(13세, 남)과 임 군(12세, 남)을 성추행 후 살해

② 2004년 1월 30일, 구로구 구로동에서 원모 씨(44세, 여)를 수차례 찔러 중상

③ 2004년 2월 6일, 이문동에서 전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

④ 2004년 2월 10일, 군포시에서 우유 배달부였던 손모 씨(28세, 여)를 흉기로 살해

⑤ 2004년 2월 13일,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모 씨(30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

⑥ 2004년 2월 25일, 다세대 주택에서 홍모 씨(33세, 여)를 흉기로 마구 찔러 중상

⑦ 2004년 2월 26일, 신림동에서 여고생을 골목길에서 칼로 10여 차례 찔러 중상

⑧ 2004년 4월 8일, 신길동 귀가 중이던 피해자 정모 씨(여 25세) 중상

⑨ 2004년 4월 22일 , 구로구 고척동에서 여대생을 집 앞에서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

⑩ 2004년 5월 9일,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귀가 중이던 여대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

⑪ 2005년 4월 18일, 금천구 시흥동 빌라에서 잠자고 있던 모자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⑫ 2005년 5월 30일, 군포시에서 우유 배달부 김모 씨(41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⑬ 2005년 6월 4일, 광명시의 한주택에 침입해 김모 씨(3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

⑭ 2005년 10월 9일,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해 자고 있던 홍모 씨(39세, 여) 등 2명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

⑮ 2005년 10월 19일, 봉천10동 주택에서 변모 씨(2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살해

  

 

이 밖에도 2006년 1월 18일(강북구 수유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첫째(21세,여) 둘째(17세,여), 막내(12살,남) 총 3명을 살해, 2006년 3월 27일 김모 씨(25세,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 2006년 4월 22일 신길동에서 김모 씨(24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상해를 입히고 격투 끝에 붙잡혔습니다.
 
2년동안 무려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정남규!!

 

 

폭력적이고 잔혹한 범행에 대한민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검거된 이후에도 그의 행동은 소름끼칠 정도 였습니다.

 

 

현장 검증 당시 분노한 시민들을 노려보며 맞서 달려들기까지 했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연행차량 안에 탔을 때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기까지 하는 모습은 지켜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정남규를 담당했던 프로파일러 조차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정남규 웃음 입니다.

 

 

또 정남규는 어떻게든 중벌을 피하고 싶어 동정론에 호소하거나 범행사실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시키지도 않은 자백을 알아서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전부 늘어놓는 등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잘못된 사회와 폭력이 만들어낸 연쇄살인범 정남규

 


1969년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정남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폭행과 자신을 아껴주던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추행과 강간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합니다.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동급생이나 선배들에게 집단따돌림과 학교 폭력을 겪었고 후배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군대 복무 시절에도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심한 구타를 겪었고 한 선임에겐 또다시 강간을 당했으며 후임들에게는 기수열외를 당하는 심한 모욕감을 당했다고 합니다.
 

 

즉 가난,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군대 가혹행위를 모두 겪게 되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이 생겼고 성인이 된 정남규는 특수강도, 절도, 성폭력범죄 등을 일삼으며 교도소 입소와 출소를 반복하게 됩니다.

 

때문에 정남규를 향한 동정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자가 여자와 어린학생 등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역에 거주하던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체포 후 심문 과정에서 범행 후 만족감을 느꼈으며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발언을 하며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계속이어나가기 위해 운동과 식단관리를하며 체력을 키웠고 과학수사 관련 잡지만 수십 권을 읽었으며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계속 시청했다고 합니다.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발밑창을 없애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범죄를 전하는 기사를 스크랩하며 수사상황을 학습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을 추적하던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얼굴을 찍은 월간지까지 스크랩하였다고 합니다.

 

 

2007년 4월, 재판 끝에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는데 재판 과정에서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결국 2009년 11월 21일,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음 날 새벽에 사망하였습니다.

 

 

더 이상 살해할 대상이 사라지자 자기 자신을 살인하며 그 끝을 완성, 따라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마지막으로 살인을 끝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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